세월호 시사

예전에 대학 시절 (아니 고등학교 이전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때부터 월간조선과 신동아를 본 노회한 학생이었으니까) 광주 민주화 운동 이야기를 접했을 때 그렇게 절절하지는 않았다. 충격적이었고 놀랐지만 선배들 처럼 분노가 일지는 않았다. 80년에서 30년만 거슬러 가면 6.25가 있다보니 우리나라에서 제노사이드는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에 비해 내 윗세대, 60년대 후반이나 70년대 초반의 선배들이 갖는 광주의 분노는 대단했으니 광주사태(민주화 운동이라 명명하기 이전에)로 인해 학생운동에 투신하거나 세상을 보는 눈이 변했다는 간증은 차고도 넘쳤다.
머리로 이해 하지만 체화되지 않는 감정이 광주 민주화 운동이다.
이게 세대 차이고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의 한계이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의 꼬마 시절 80년 광주가 어떤 기억이 있겠는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세월호 때문이다.
내 예상과 다르게 세월호 사태는 너무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워 지금도 그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 난 사고 당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집사람은 그 뒤 몇달을 눈물로 지새웠다.
그 당시 정신과 의사 정혜신 씨가 이 상처는 세대에 영원히 남을 거라는 인터뷰에 동의 하지 않았다. 자신이 연관되지 않는 한 절대망각의 재주를 가진 우리나라 사람 특성 상 얼마 지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봤다. 물론  나도 포함되서다.

근데 그렇지가 않다.
몇 주전 친구와(그냥 불X친구) 간만에 술먹다 보수적인 나의 부모님과 싸운 이야기가 나왔다.
자연스레 다툼의 원인인 세월호 이야기가 나왔고 이야기 하다보니 감정이 격해지고 덩치가 산 만한 해병대 나온 친구놈도 눈물을 글썽이며 어쩔 줄을 모른다. 술자리 후반부 내내 중년 둘이 울어서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자식 키우는 성인들은 그게 잊혀지지가 않는거다. 남의 일인 것 같다가도 이야기만 나오면 감정이 격해져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이걸 광주랑 비교하는게 맞는게 모르겠지만 그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광주를 잊지 못하듯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는 나도 세월호를 잊지 못하겠다.
그냥 무슨 연관된 사건만 보면 눈물 부터 나온다.

오늘도 박근혜 쫏겨 났을 때 울컥한 건 결국 애들 때문이다.
법이라는게 오늘 법관들 이야기 했듯 정해진 룰에 따른 다는거 안다.
법이 말하 길 세월호는 문제가 아니지만 최순실은 문제라고 한다.
뭐가되든 서울만 가면 되는거지만 법을 떠나 감정으로만 보면 최순실이가 몇 백억이든 몇 천억이든 눈먼돈 먹은거 관심 없다. 솔직히 단지 그 문제면 연말까지 임기 채우고  그 담에 감옥 갈 수도 있다.  근데 애들 죽은 건 용서가 안된다. 

그러니까 우리 세대의 트라우마다. 디테일하게 말하면 10대부터 50대까지 일꺼다. 깨인 노년층도 있겠지만 나름 평생 바르게 사신 부모님의 태도를 보면 세월호는 당신들 세대 일이 아니다. 그 격한 기억은 오로지 우리 세대의 기억이다.  
 아마 먼 미래에 지금 유년기나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 세대들은 왜 노땅들은 세월호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는지 이해 못 할 수도 있겠다.  근데 겪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아무리 법이 말하 길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사실 근저는 세월호다. 혹자는 명예혁명이라고 하고 아무도 피를 흘리지 않은 세계 역사이래 가장 평화적인 시위라고 하지만 어느 역사에 희생이 없겠는가. 어찌보면 세계 현대사에 가장 처참한 혁명이었다. 어떤 혁명의 희생도 아이들을 앞세우지는 않으니까.
그게 없었으면 오늘까지의 동력도 없었다.
만약에 오늘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발전한다면 우린 모두 그들에게 빚진거다.


기회주의자 시사

회사 근처 서점에 들어가니 입구에 큼지막하게 전여옥의 사진이 걸려 있다.
새로 신간을 냈나본데 박근혜 탄핵 국면에 삐대 뻔뻔하게 얼굴 내밀고 있는 모습이 아주 불쾌 했다.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라 전여옥이 어떤 인간인지 많이 잊혀졌지만 10여년 전 2000년 대 중반 국회의원 할 때 대단했었다. 
지금으로 보면 김진태 수준의 이미지로 갖은 막말에 표절 이슈 등 전여오크라 불리우며 혐호감의 대명사 였다. 

당시 노무현 정권에 대해 갖은 막말을 쏟아 냈고 특히 나라 경제 말아 먹었다는 소리를 자주 했었다. 당시 노무현 정권 욕하는 거야 국민 스포츠 였지만 그중 전여옥은 발군 이었다.
가뜩이나 싫어한 전여옥 이었지만 노무현 정권 말기에 주식투자로 대박나서 1년에 16억인가를 벌었다는 소식 듣고 기가 찼다.  말로는 노무현이가 경제 망치고 나라 말아 쳐먹었다고 갖은 염병은 떨고 뒤로 주식 호황에 편승해서 돈은 또 벌고 앉았다. 경제 망쳤다며..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통에 박근혜에서 이명박으로 옮겨 타고 이명박 때까지 호위호식 하면서 지낸거고 그렇게 박근혜 뒤통수 치고 갔으니 박근혜 시절에 찌그러져 있는 건 당연한데 박근혜 요꼬라지 나니까 또 기어 나와서 핍박의 희생양인양 책 내고 앉았으니 불쾌감이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쓰다 보니 기분만 나빠졌다.   

03-05 음식

예전 동호회 활동 할 때 주도적으로 활동했던 누님이 Daily로 가장 좋아했던 샤또 글로리아. 인상 깊었는지 괜히 나도 좋아라 한다.
Daily는 좀 오버고 그냥 적당한 수준에서 가장 선호한 와인인 듯.. 볼 때마다 그분 생각이 나서 매장에서 보면 집게 되다. 신세계에서 수입 하는지 행사를 자주 한다. 몇년 전에 사다 놓고 두고 있었다가 집사람과 마시려고 찾아서 땃다. 집사람 기호가 명확히 메를로 이다 보니.
보르도 고급와인의 채취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느낄 수 있다.
사실 보르도든 부르고뉴등 미니엄 이 정도는 되야 의미가 있어 보인다.


직장 생활 암흑기 중 말레이시아 지냈던 기간이 있다. 공장에 있었는데 공장이 문제가 아니라 말레이시아 자체가 먹을 게 없다.
태국, 베트남과 다른 문화 후진국. 나시고랭 말고는 먹을게 없어 끼니 때마다 볶음밥만 먹다가 변비에 고생한 기억이... 
막판에는 차타고 30분 거리의 한국식당에 갈 수 밖에 없었으니 일도 힘든데다가 먹을 것도 없어 힘들었던 동네였다. 그때 생긴 편견이 카레와 나시고랭. 질려서 쳐다도 안봤다. 카레는 공장 식당에서 인도인들과 같이 먹다보니 질렸는데 원래 동남아나 중국 공장가서 현지인들과 같은 식사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근데 거기선 같이 먹었다. 말레이시아 애들도 인도 노동자들이랑은 안어울리던데 같이 매일 점심마다 카레 먹었다.


몇주 전 자카르타 출장에 숙소 도착하니 11시다. 야간 룸서비스에 만만한게 나시고랭이라 시켰는데 맛 있어서 감동했다.
야심한 밤이라 몇술만 뜨려고 했으나 결국 거의 다 먹었고 소화 시키려고 새벽에 잤다. 짧게 있다보니 음식 몇가지 못 먹었는데 대부분 맛있어서 자카르다에 대한 인식이 좀 좋았다.





찬물 잡설

요즘 간간히 요리를 하면서 냉수를 쓸 때가 있다.
주로 과일 야채 씻을 때인데, 그 잠깐을 견딜 수 가 없다. 그냥 차다가 아니라 손이 무슨 망치로 두들겨 맞는 기분이다.
딸기 잠깐만 씻으면 되는데 그게 너무 고통스럽다.
집이나 사무실이나, 어디들 가던 웬만하면 온수가 나오다 보니 한겨울에도 찬물 댈 일이 없고 그러니 몸이 찬물을 못견딘다.

사람의 감각이라는게 참 간사하다.
군시절에는 수돗물 보다 더 차가운 지하수로 한겨울에 목욕도 했는데 이제는 잠시 손도 못댄다.
군대 있을 때 병장 할애비라도 단 한가지는 통제 불가능 했는데 바로 온수 였다. 먹고 자는거 다 맘대로 할 수 있지만 한겨울에 냉수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온수 나오는 잠깐을 제외하고는 얼음장 같은 지하수로 세수에 세탁까지 해는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잠시도 못 만지겠다.
나날이 편하게 사는걸 추구하다 보니 겨울에 추운 것 못 참겠고 여름에 더운것 못 참겠다. 참을성이 없어져서 힘들게 살 수가 없다.

아주 예전에 유력인사들이 머무는 구치소, 서울 구치소인지, 소장이 월간지에 인터뷰 한 기사가 있는데 질문이 왜 재벌이나 정치인은 감옥에만 가면 병원에 입원하고 휠체어 타고 나오냐는 것였는데
답변이 예상과 다르게 꾀병이 아니라 진짜 아프다고 한다. 평생을 편하게만 살다보니 감옥 생활에 몸이 못 견디고 진짜로 탈이나서 아프다고 한다. 그러니까 휠체어가 꾀병이 아니라는 거다.

그때만 해도 그게 말이 되나. 나도 곱게 자라다가 군대가 같은 험한 꼴 다 당해도 감기 한번 안걸렸다. 라고 생각 했는데 중년 되서 찬물도 못만지는 거 보니 평생 곱게만 산 늙은이들은 진짜 아플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 한국전쟁 때 노동 안해본 양반집 자재들이 전쟁 중 급박하게 후퇴할 때 그냥 지쳐 쓰러져 죽었다고 하던데 뭐 이해가 간다. 아마 지금의 나라면 겨울에 세수하다가 얼어 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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